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맷 홀리데이 (문단 편집)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10566323.r23.cf2.rackcdn.com/03-28-23_re-signing-matt-holliday-in-st-louis_original.jpg|width=100%]]}}} || 마침 트레이드 직전에 리그와 구장 적응을 끝내며 스탯을 미친듯이 끌어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주목했지만, [[알버트 푸홀스]] 혼자 타선을 이끌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그를 데려갔고, 이 선택은 완전히 적중했다. 2009 시즌 남은 63경기 동안 0.353 13홈런 55타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한 것. 이 때문에 세인트루이스는 2009년 PS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빌리 빈이 너무 성급하게 할리데이를 처분했다[* [[http://www.baseball-reference.com/teams/OAK/2009.shtml|2009 오클랜드 팀 성적]] 보다시피 홀리데이가 4월에 그렇게 삽질을 했음에도 시즌 끝나고 나니깐 팀내 최고의 OPS를 찍은 타자였다. 그리고 유일한 8할대 OPS.]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트레이드로 얻어온 유망주들 역시 폭망하면서 본인 최대 흑역사 트레이드로 남게 되었다.[* 다만 홀리데이는 규모가 큰 장기계약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오클랜드의 주머니 사정상 애초부터 단기간의 성적을 뽑아내기 위해 영입한 선수였다. 그 탓에 처음 오클랜드로 영입되던 시점부터 그가 오랜 기간 오클랜드에 머물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기대이하의 성적과 위에서 언급한 발언들이 겹쳐 오클랜드는 그를 처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데, 바로 2009년 디비전시리즈에서 9회초 2사 후에 [[히 드랍 더 볼|어이없는 낙구]]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것. [[http://cfile29.uf.tistory.com/image/1429A0414E8DDEED16DF8B|문제의]] [[http://cfile10.uf.tistory.com/image/1329A0414E8DDF0B171962|그 장면]] 이 때문에 카즈는 조기 광탈하고 만다. [[http://birdsnest.tistory.com/111|당시 사건에 대한 세이버메트릭스적 분석]]. 하지만, 그 타격실력은 정말 아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보라스와의 지리한 협상 끝에 7년간 120M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그 뒤의 [[칼 크로포드]]라든지, 워싱턴 내셔널스로 간 [[제이슨 워스]] 등의 계약에 비하면 결과적으로 아주 저렴한 계약이 되었다고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사실 카디널스가 홀리데이를 잡은 건 [[알버트 푸홀스]]의 요청 때문이기도 했다. 푸홀스가 전력보강을 해서 강팀을 만들지 않으면 팀을 떠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멘트를 여러 번 날렸다. 다만 정작 푸홀스는 맷홀의 계약 직후에 '''"왜 쟤 연봉이 나보다 많음?"'''이라며 징징거렸다.][* 2011년 초에 푸돌이가 재계약 협상이 틀어지자 홀리데이는 "내 연봉 나중에 주고 푸돌이 잡으셈"이라 하기도 했다.] FA계약 이후 첫 해인 2010년, 홀리데이는 .312 .390 .532 28홈런 103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푸홀스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팀은 [[신시내티 레즈]]에 이은 NL 중부지구 2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에도 .296 .388 .525 OPS .912를 치는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다만 부상으로 결장이 잦아 결국 30홈런 100타점 달성에는 실패하고 22홈런 75타점으로 만족했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2011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2011년 월드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고, WS에선 부진했지만 생애 첫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푸홀스가 팀을 나간 2012년 초반에는 3번을 치면서 득점권에서 잉여 모드로 부진을 거듭하면서 카즈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157경기 .295 .379 .497 27홈런 102타점이라는 성적으로 다시 한번 모범 FA의 위용을 뽐냈다. 2013년에는 병살타를 31개나 치며 병살왕에 등극했고 전반기에 다소 삽질을 하며 까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300 .389 .490 22홈런 94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먹튀들이 판을 치는 2010년대 FA 계약자들 중 군계일학의 행보를 이어갔다. 2014년에는 0.272 0.370 0.441 20홈런 90타점으로 비율 스탯이 좀 떨어졌지만 팀 타선을 잘 이끌어 나갔다. 2015년에는 잔부상으로 인하여 73게임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0.279 0.394 0.410 4홈런 35타점으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기록하였으나 45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단일 시즌 팀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전 기록은 2008년 푸홀스가 기록한 43경기 연속 출루였다.] 2016년에는 좁아진 수비범위로 인해 외야와 1루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고 그동안 계속 유지해왔던 OPS 8할선 마저 무너지는 부진을 기록하고 있다. 8월 11일 시카고 컵스 원정 경기에서 마이크 몽고메리의 공에 맞아 손등 골절을 당하며 잔여 시즌 복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가 2017년 옵션을 실행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2016시즌을 마치면 팀을 떠나게 될 예정이다. 카즈와의 이별이 발표된 날인 9월 30일 피츠버그전에서 7회말에 대타로 나와 솔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2009년부터 간판타자 역할을 해준 그를 위해 [[부시 스타디움]]의 홈 팬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Lw7cKnHUHUQ)]}}}|| 2016년 성적은 0.246 0.322 0.461 20홈런 62타점. 카디널스와의 7년 계약기간 동안 타/출/장이 288/377/486, OPS 863, 143홈런, 561타점, bWAR 20.7, fWAR 24.3을 기록하였다. 처음에 7년 1억 2,000만 달러로 계약할때는 오버페이라는 평가도 많았지만 꾸준히 활약하면서 월드 시리즈 우승 한번, 리그 우승 두번으로 카디널스와 홀리데이 양측이 모두 만족할만한 모범 FA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